초 혼
산산히 부서진 이름이어!
허공중에 헤어진 이름이어!
불러도 주인없는 이름이어!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어!

심중에 남아있는 말한마디는
끝끝내 마자하지 못하였구나.
사랑하던 그사람이어!
사랑하던 그 사람이어!

붉은해는 서산마루에 거리었다.
사슴의 무리도 슬피운다.
떨어져 나가앉은 산우에서
나는 그대의 이름을 부르노라.

설움에 겹도록 부르노라.
설움에 겹도록 부르노라.
부르는 소리는 빗겨가지만
하늘과 땅사이가 너무 넓구나.

선채로 이자리에 돌이되어도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어!
사랑하던 그사람이어!
사랑하던 그사람이어!


향 수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회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비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조름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베개를 돋아 고이시는 곳,

-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흙에서 자란 내 마음
파아란 하늘 빛이 그리워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려
풀섶 이슬에 함추름 휘적시든 곳,

-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전설바다에 춤추는 밤물결 같은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얼니 누이와
아무렇치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철 발벗은 안해가
따가운 해ㅅ살을 등에 지고 이삭줏던 곳,

-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하늘에는 석근 별
알 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고,
서리 까마귀 우지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지붕,
흐릿한 불빛에 돌아앉아 도란도란거리는 곳,

-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절 정
매운 계절의 챗죽에 갈겨
마츰내 북방으로 휩쓸려 오다

하늘도 그만 지쳐 끝난 고원
서리빨 칼날진 그 우에 서다

어데다 무릎을 꾸러야하나?
한발 재겨디딜 곳조차 없다

이러매 눈깜아 생각해 볼밖에
겨울은 강철로된 무지갠가 보다



무등을 보며
가난이야 한낱 남루에 지나지 않는다.
저 눈부신 햇빛 속에 갈매 빛의 등성이를 드러내고 서 있는
여름 산같은
우리들의 타고난 살결, 타고난 마음씨까지야 다 가릴 수 있으랴.

청산의 그 무릎 아래 초란을 기르듯
우리는 우리 새끼들을 기를 수밖에 없다.

목숨이 가다 가다 농을 쳐 휘여드는
오후의 때가 오거든
내외들이여 그대들도
더러는 앉고
더러는 차라리 그 곁에 누어라.

지어미는 지애비를 물끄럼히 우러러 보고
지애비는 지어미의 이마라도 짚어라.

어느 가시덤불 쑥 글헝에 뇌일지라도
우리는 늘 옥돌같이 호젓이 묻혔다고 생각할 일이요
청태라도 자욱이 끼일 일인 것이다.


풀
풀이 눕는다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은 눕고
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
다시 누웠다.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날이 흐리고 풀이 눕는다
발목까지
발밑까지 눕는다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


이별가
뭐락카노, 저 편 강기슭에서
니 뭐락카노, 바람에 불려서

이승 아니믄 저승으로 떠나는 뱃머리에서
나의 목소리도 바람에 날려서
뭐락카노 뭐락카노
썩어서 동아밧줄은 삭아 내리는데

하직을 말자 하직 말자
인연은 갈밭을 건너는 바람

뭐락카노 뭐락카노 뭐락카노
니 흰 옷자라기만 펄럭거리고......

오냐. 오냐. 오냐.
이승 아니믄 저승에서라도......

뭐락카노, 저 편 강기슭에서
니 음성은 바람에 불려서

오냐. 오냐. 오냐.
나의 목소리도 바람에 날려서.

                                      -박목월, <이별가>에서


또 다른 고향
고향에 돌아온 날 밤에
내 백골이 따라와 한 방에 누웠다.

어둔 방은 우주로 통하고
하늘에선가 소리처럼 바람이 불어 온다.

어둠 속에 곱게 풍화작용하는
백골을 들여다보며
눈물 짓는 것이 내가 우는 것이냐?

백골이 우는 것이냐?
아름다운 혼이 우는 것이냐?

지조 높은 개는
밤을 새워 어둠을 짖는다.

어둠을 짖는 개는
나를 쫓는 것일게다.

가자 가자
쫓기우는 사람처럼 가자.

백골 몰래
아름다운 또 다른 고향에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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